사도신경 강해 (6) -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도신경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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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1. 그리스도의 고난의 극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심
지난 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바로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태어나심부터 고난이었으며, 그의 삶 가운데 머리를 둘 집조차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점점 고조되어 죄인으로 정죄받고 십자가를 지시고, 조롱과 수치를 당하시고 결국 본인이 죽으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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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삶 전부가 고난이었다면, 바로 그 고난의 극치, 클라이막스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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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두 가지 역사적 사실 즉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장사지낸 바 되신 예수”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은혜 나누겠습니다.
본론
1.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1)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
예수님의 삶이 고난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이 고난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삶이 고난이었다면, 고난으로만 끝낼 수도 있었는데 예수님은 왜 굳이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죽을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무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분이 죽으셨다는 것은 죽음의 이유가 그분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바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답입니다.
마태복음 20:28 NKRV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움에 맞지 않는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의 기준에 미달되는 자들이 ‘죄인’인데,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그 미달됨에 따른 형벌의 심판을 담당할 능력도 없고, 그 어떤 피조물이나 대상도 이 심판을 담당할 수 없습니다.
이 죄에 대해서는 우리는 무한 의존적인데, 그 의존의 대상이 우리나, 피조물이 될 수는 없는겁니다.
결국 그 하나님의 공의에 만족되는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대신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바로 속죄(redemption)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의하여 죽어야 할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여 십자가가 세워지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죽음의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의 맥락 안에서 표현하자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죄의 자녀들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비로소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대신한 속죄의 의미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요?
다른 죽음의 방식들이 있는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죽으셨여야 하는데 그 와중에 우연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냥 죽으신 방법 여러가지 중 우연히 십자가에서 죽게 된 것이라고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유대인들, 혹은 예수님의 죽음을 반대하거나 싫어했던 유대인들조차도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서로 공유하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21:23 NKRV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의 경전이었던 모세오경 중 이 율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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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것을 본 유대인들은 모두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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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분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버림받은 자’ 라고요.
이렇게 봤을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말했던 것은 저 자가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서 죽어야 했던 십자가의 죽음을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지신 인류의 죄는 하나님의 율법의 의로움에 도달하지 못하는 기준으로 인한 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에 따라 예수님은 죽으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예수님은 직접 받으십니다.
바울은 이러한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갈라디아서 3:13 NKRV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적용)
1. 십자가에서, 장사되어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1) 죄책감으로 물든 신앙은 잘못된 신앙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모든 죄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을지라도 그 믿음을 갉아먹는 기생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기생충은 바로 죄책감입니다.
물론 우리는 매일 매일 반복되는 죄, 새로운 죄를 짓게 되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성화의 과정, 거룩해져가는 과정 중에 있기도 하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결정적으로, 그리고 단번에 예수님께서 모든 죄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이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까?
모든 죄들에 대하여 예수님이 단번에 죽으셨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모든 죄들에 대하여 예수님이 단번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책감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책감을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하는 것이지, 우리의 신앙을 죄책감에 물들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자유를 누리게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죄에 대한 결박을 푸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삶을 살아나가면서도 자신의 죄책감에 얽매이고, 다시 포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죄책감이 생긴다면 그것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죄책감을 가지고 나아갔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우릴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보게 됩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모든 죄가 해결되었다는 은혜를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책감이 생겼을 때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면 우리는 죄책감이 아닌 은혜로 물드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2.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
(1) 무덤에 묻히신 사실의 의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신 후에 돌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장사되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으시고 장사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장사되셨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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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겔이라는 학자가 예수님의 장사되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사지낸 바 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확언해 준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정말 죽었다는 죽음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이 장지에 가서 묻히기 전에 현대에도 이 사람이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죽은 사람은 24시간 이내에 시신을 화장하거나 묻으면 안 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사망 선고를 받은 의사로부터 받은 사람이 살아난 경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의학적인 이유죠. 또한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로 24시간이라는 공백을 둡니다.
그래서 시신을 처리하는데는 의사의 의학적 사망 선고가 필요하고, 사망진단서를 제출하는 법적 절차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9:31–34 NKRV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렇게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걸치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자에 의해 시신이 처리되어 장사됩니다.
적용)
(2) 이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또한 장사된 예수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이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토끼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이게 제가 얼떨결에 키우게 된 건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토끼를 두 마리 키우는데 제가 귀엽겠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너 키우고 싶어? 이래서 저는 당연히 응 키우고 싶어 이랬죠.
그게 제가 그 토끼를 키운다는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그날 제 집을 아는 그 친구가 토끼를 가져온거에요.
부모님이 안 계셨고 저 혼자 있었거든요? 근데 그 토끼를 갑자기 키우게 된 겁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토끼를 키울 준비도 없이 갑자기 토끼를 키우게 됐고, 결국에 토끼는 길게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때 제가 시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걸 깨닫게 됐거든요. 그 토끼가 죽은 시체를 만지는 것도 무서운 겁니다.
죽음에 대한 그 공포를 간접적으로 깨닫게 되었어요.
그 해에 외할머님이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제가 봤거든요. 그때도 똑같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저에게 그게 내재되어 있더라고요.
근데 아마 모든 사람이 그런 공포를 가지고 잇을 겁니다. 왜 이런 공포가 있나요?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가 있는거죠.
그런데 또 어떤 분들은 죽음에 대해 다른 종류의 공포를 느끼기도 할 겁니다.
그것은 내가 죽든, 누군가가 죽든,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없어짐에 따라 느끼는 다른 종류의 공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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